4명, 서기 2명을 두었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근대의 역사 인식이 반영된 근대관찬사서의 변천에 대하여 간략히 알아보고 대표적인 관찬기관이자 일제 식민사관의 확산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던 조선사편수회 안에 감추어진 내막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다.
2. 근대관찬사서의 흐름
사강목에 담긴 세부내용에 대한 고찰(지리고, 고이, 사론 등에 대한 연구)이 이루어졌다. 본고에서는 안정복과 동사강목에 대한 검토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서 진행하였다. 첫째로, 안정복이 살았던 조선후기의 역사흐름과 인식을 정리하여 동사강목의 사학사적 위치에 대해 논해보고, 둘째로 안정복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이후 WTO체제가 출범하면서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제2의 개국’ 이나 세계화에 대한 논의들이 난무하고 있다. 또한 우리와 이웃한 중국도 등소평집권이후 시작된 개혁, 개방정책이 가속화되면서 ‘제2의 양무운동기’ 또는 ‘제2의 근대주의’시기가 도래한 듯한 느낌이다. 그리
조선 초에 간행된 초간본도 있다. 우선 최남선이 소장했으나 지금 고려대 도서관에 보관 중인 光文會本과 渡邊勢이 일본으로 가져간 徹寺本을 들수 있다. 두 책 모두 3권에서 5권에 이르는 缺落本이다.
또한 鶴山 李仁榮과 石南 宋錫夏 소장본이 있는데, 현재 그것의 필사본이 고려대 도서관에 전한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스스로 耕作․耕食한다. 토지소유권은 인정될 수 없는 것인데도 국가가 이를 승인함은 부당하다. 우리는 끝까지 이를 타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지경이 된 것은 일본인의 소행이다. 조선의 지주도 일본인과 한 무리가 되었다.”(조선총독부『조선의 군중』1925).
사상의 세계를 지배한 강력한 세력인 불교 또한 새로운 방향을 찾기 시작했다. 무신란 이후 활발하게 전개된 선종의 움직임은 문신귀족에 기반을 두고 발전했던 교종을 대신하여 불교계의 주류를 형성하면서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지눌로부터 혜심 등으로 이어지는 무신란 이후의 보조선(普照禪)은
사의 왜곡과 식민사학의 부식도 이러한 식민통치의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또한 일제는 ‘조선사편찬위원회’ 및 조선사편수회를 조직하여 우리민족의 역사왜곡 및 식민사학의 발전을 추구하였다.
본문에서는 ‘근대관찬사서의 변화’와 ‘조선사편찬위원회’ 및 조선사편수회‘에 대해서
1. 조선사편수회 이전의 관찬사서 편찬
1894년 6월 28일 군국기무처는 의정부 산하에 編史局을 두어 “본국 역사의 편집을 관장”할 것을 결정하였다. 한편 이때 신설된 학무아문에는 편집국이 설치되고 여기에서 “국문 철자, 각 국문 번역 및 교과서 편집 등을 관장”했다. 따라서 의정부 편사국에서
조선전기의 歷史認識과 東國通鑑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하겠다.
Ⅱ. 조선전기의 歷史認識
태조에서 성종으로 이르는 15세기에는 고려시대와 성격을 달리하는 새로운 통치 질서를 세워가는 과정과 맞물리면서 국가의 통치철학을 담은 다양한 사서(史書)들이 관찬(官撰), 즉 국가사업으로 편찬되었